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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18장-31장
한사랑 2008.09.28 조회 : 1117
파일 :

출 18 

3. 세상에서 온 지혜(18장)


이드로가 모세에게 준 충고가 주께로부터 온 것인가 육신에서 온 것인가에 대하여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이 장이 미래의 왕국을 상징하며 이 때에 신부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이방인(이드로로 상징됨)이 이스라엘의 축복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며 그의 통치권을 함께 나누어 가지게 될 것은 분명하며 이것은 마치 부장들이 모세와 함께 통치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드로의 권면이 육신적인 것이며 주께로부터 온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 한 가지 이유는 민수기 11장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그의 영을 70장로들에게 부어 그 능력을 나누어 주었다. 이드로는 다분히 이기적으로 문제를 해석했다. “어찌하여 그대는 홀로 앉았고,“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이 말은 마치 베드로가 마태복음 16장 21절 이하에서 “주여, 자신을 불쌍히 여기사 십자가를 지지 마소서“라고 말한 것과 같게 여겨진다. 하나님은 3-4장에서 모세에게 그가 단독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은혜를 공급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이드로의 의견에 동의하고 하나님께 불평하였다. 11절에서 이드로는 여호와는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다“고 시인하지만, 시인이란 진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정확히 고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27절에서 이드로는 이스라엘과 함께 머물기를 거절하고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확실히,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그 조직에 있어 잘못된 것은 결코 없다. 그러나, 이드로에게서 온 “세상적인 지혜“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이드로 자신조차도 확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3절). 그는 여호와께서 하신 모든 일을 기뻐하였으나(9-10절) 하나님께서 모세를 도와 생의 일상적인 짐을 질 수 있게 하심을 믿으려 하지는 않았다. 모세는 이드로의 책략을 채택했고 백성들도 동의했다(신 1:9-18). 그러나 하나님이 이 조직을 인정하셨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사실상 민수기 11장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태도로 볼 때 그렇지 않음을 알수 있다.


아말렉이 공격해 오듯 공개적이고 분명한 육신의 공격이 있는 반면 또한 이드로의 경우처럼 포착하기 어려운 육신의 생각들도 있다. 모세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라고 부르신 일을 무엇이나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은 곧 하나님의 가능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동정하여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고 느끼고 하나님이 너무 큰 짐을 지게 하셨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이사야 40장 31절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읽자."



출 19-23

      

하나님의 율법-출애굽기 19-23장-


● 중요성 : 오늘날의 신약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모세의 율법과 그 의미라는 논제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 하나님의 언약들에 혼동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말씀을 검토하여 전체 모세 체제의 위치와 목적을 결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 이름 : 출애굽기 19장의 시작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이르기까지(골 2:14) 우리는 모세의 제도 아래 있게 된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 “율법“, 때로는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편의상 우리는 흔히 “도덕율“(근본이 되는 십계명을 가리킴), “의식법“(제사 제도에 나타난 모형과 상징에 연관됨), “민법“(백성의 생활을 치리하는 일상의 법을 의미함)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성경은 도덕법과 의식법 사이에 어떤 구분을 두고 있지는 않는 것같다. 왜냐하면 전자는 후자의 일부인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대한 네번째 계명은 “도덕법“에 있는 것이지만 분명히 유대 안식일에 관한 “의식법“의 일부이다.


● 목적 : 하나님은 이미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 유대인과 영원한 약속을 하셨다(창 15:1-). 이 언약은 그들이 순종하거나 불순종하거나 상관이 없는 언약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고, 가나안 땅의 소유권을 주셨다. 모세의 법은 아브라함의 언약에 “첨가된“ 것이지 그것을 무효화시킨 것은 아니었다(갈 3:13-18). 율법은 하나님의 이전 언약 옆에 나란히 끼어든 것이고(롬 5:20) 또한 임시적인 방법이기도 했다(갈 3:19). 율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다(출 19:4-6/시 147:19-20). 하나님은 누구를 구원하려고 율법을 주신 것은 아니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갈 3:11/롬 3:20). 하나님은 다음의 이유들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


그의 영광과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함(신 5:22-28)

인간의 죄성을 나타내기 위함(롬 7:7/롬 7:13/딤전 1:9-/약 1:22-25)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임을 알리고, 이교를 믿는 이방 민족들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함(시 147:19-20/엡 2:11-17/행 15:1-)이스라엘에게 경건한 삶의 기준을 주셔서 땅을 물려받고 축복을 누리도록하기 위함(신 4:1-/신 5:29-/삿 2:19-21)

이스라엘로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게 하기 위함(갈 3:24)

몽학선생은 아이를 성인의 생활에 대비시키는 직무를 맡은 훈련받은 노예였다. 아이가 성숙하여 성인이 되면 유업을 받게 되며, 몽학선생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율법 아래의 이스라엘은 “영적인 아이“였으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갈 3:23-4:7).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모형과 의식으로 나타내기 위함(히 10:1)


율법은 거울로 비유된다. 인간의 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약 1:22-25). 멍에로 비유되는 것은 율법이 속박을 가져오기 때문이며, 속박이라 함은 육신이 율법에 순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행 15:10/갈 5:1/롬 8:3). 가정교사로 비유됨은 이스라엘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한 길을 준비하기 때문이며(갈 3:23-4:7), 돌비에 쓴 의문은(고후 3장) 성령에 의해 우리의 마음에 기록된 사랑의 율법과 대조된다. 그림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소유한 실현과 성취에 대조된다(히 10:1/골 2:14-17).

율법이 할 수 없는 일들, 즉 무엇을 완전케 하는 일(히 7:11-19/히 10:1-2), 죄로부터 의롭게 하거나(행 13:38-39/롬 3:20-28), 의롭다함을 주는 일(갈 2:21), 마음에 평안을 주며(히 9:9), 생명을 주는 일(갈 3:21) 등을 할 수 없음에 유의하자.


● 그리스도와 율법 :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요 1:17).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제도와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가지는 은혜로운 지위 사이에는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서 나셨고(갈 4:4-6) 모든 면에서 율법을 성취하셨다(마 5:17). 그의 인격과 사역은 율법에 나타나 있다(눅 24:44-47). 그는 율법의 마침이며 그리스도인의 의로움이시다(롬 10:1-13). 그는 율법의 형벌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다(갈 3:10-14/골 2:13-14). 율법은 더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을 분리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엡 2:11-12).


● 그리스도인과 율법 :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율법 아래 있지 않고(롬 6:14/갈 5:18) 은혜의 영역에서 살고 있음을 아주 명백히 밝힌다. 그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며(롬 7:1-4) 율법에서 구출되었다(롬 7:5-6),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속박에 다시 말려들지 말라고 경고를 받고 있다(갈 5:1-4). 은혜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와 아들이 아니라 종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 말이 그리스도인은 법없이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요구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것은 바울이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영광스런 지위를 강조하자 그의 적들이 바울에게 던진 반론이다(롬 6:1). 고린도후서 3장은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복음의 영광이 구약 율법의 임시적인 영광을 훨씬 능가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은혜 안에서 성장함에 따라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3:18). 사실은 신약 그리스도인들이 구약 신자들 보다 생활에서 요구받는 것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구약 율법은 외적인 행위를 다루지만 신약 율법인 사랑은 내적인 마음 가짐을 다루기 때문이다.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죄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자유란 면허증은 아니다. 우리는 자유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그 자유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만 한다(갈 5:13-26 참조). 우리는 더 높은 법, 사랑의 법, 곧 그리스도의 법 아래에 있다(갈 6:2). 우리는 육신의 힘을 좇아 하나님께 순종하려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롬 7:14). 육은 죄악되고 연약하여 법에 순복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여기며(롬 6장), 성령께 굴복할 때, 그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율법을 성취하신다(롬 8:1-4).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실체를 그림자와, 자유를 속박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은혜 안에서 가지는 높으신 부르심을 상실하는 것이다. 율법이란 하나님을 기쁘게 할 무슨 일을 행해야 한다는 뜻이며, 은혜는 그의 완전하신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는 뜻이다


● 오늘날의 십계명 : 구약의 율법은 모두 십계명을 확대하여 적용시킨 것이다. 십계명 중 아홉 가지 계명은 오늘날의 신자를 위해 신약에 반복되어 있다.


1)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행 14:15/요 4:21-23/딤전 2:5/약 2:19/고전 8:6).

2)우상이나 형상을 만들지 말라(행 17:29/롬 1:22-23/요일 5:21/고전 10:7/고전 10:14).

3)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약 5:12/마 5:33-37/마 6:5-9).

4)안식일을 기억하라(신약 어디서도 반복되지 않았다)

5)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엡 6:1-4).

6)살인하지 말라(요일 3:15/마5:21-22).

7)간음하지 말라(마 5:27-28/고전 5:1-13/고전 6:9-20/히 13:4).

8)도둑질하지 말라(엡 4:28/살후 3:10-12/약 5:1-4).

9)거짓 증거하지 말라(골 3:9/엡 4:25).

10)탐내지 말라(엡 5:3/눅 12:15-21).


신약에 나와 있는 이 율법의 요약을 눈여겨 보자. 안식일에 대하여 언급한 구절은 없다(마 19:16-20/막 10:17-20/눅 18:18-21/롬 13:8-10). 물론 사랑의 “새 계명“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위한 근본적인 동기이다(요 13:34/롬 13:9-10). 이 사랑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널리 흘러나간다(롬 5:5).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며, 우리 생활을 지배하는 그 외의 법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옛 본성은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새 본성은 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을 위한 옛 언약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날이었다. 반면에 주의 날은 새 언약 아래 있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날이다. 안식일은 행위로 얻는 구원을 상징한다. 6일간 일하고 그리고 쉰다. 반면에 주의 날은 은혜로 받은 구원을 뜻한다. 먼저 쉬고 다음으로 행위가 따른다. 안식일, 희생제사, 음식에 관한 법, 제사장 직분, 성막 예배 등,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졌다."


출 24 

성막-출애굽기 24-27장-


● 서론 :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 가운데 거하시는 다섯 가지 다른 경우를 제시한다. 즉, 성막에(출 25:8), 성전에(왕상 8:1-), 인간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요 1:14/골 2:9), 교회에(엡 2:20-22), 거룩한 성에(계 21:3) 임재하신다. 이 중에서 처음 세 가지는 과거와 연관되고, 네번째는 현재에, 그리고 다섯번째는 미래에 연관되어 있다.

이 중의 첫번째는 성막이다. 이 성스러운 건축물은 500년 동안 유대 민족의 생활에서 그 중심을 이루었다. 하나 하나가 깊은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몇 가지 뚜렷한 외양을 조사하고 이들이 암시하는 교훈을 지적해 보기로 하자.


1. 인간의 노력:하나님의 요구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구속자의 승리를 찬양하며 홍해 옆 광야에 서 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거처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 의향을 담은 요구를 해오셨다. “내가 그에게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백성이 말했고,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해 짓게 하리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출 15:2/출 25:8).

그 옛날 솔로몬이 그러했듯이 당신은 몹시 궁금한 중에 물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왕상 8:27) 만일 거하신다면 어떤 근거로 죄악된 인간들 중에 머무실 것인가? 확실히 백성의 거룩함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성막 건축에 관한 지시를 받으며 산에 있을 때 백성들은 그 산의 아래에서 황금 송아지를 섬기고 있었다(출 32장). 그 대답은 백성의 도덕적인 탁월성에서 발견되지 않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은혜에서 찾을 수 있다.

족장 시대의 초기에는 하나님이 가끔 이 땅을 방문하셨던 것이 사실이다. 날이 선선할 때에 동산을 거니셨고(창 3장), 마므레 평지에서 아브라함을 방문하셨다(창 18:1). 하나님은 구원이 완성된 땅에서만 그들 중에 거처를 마련하실 수 있으셨다.


2. 성막


건축에 필요한 재료 설명(출 25:1-9)

세부적인 설명, 크기, 기명과 기물의 크기(출 25:10-27:29)

성막은 두 구획으로 나뉜다. 성소와 지성소(Holy of Holies)인데 둘은 두껍고무거운 휘장으로 분리되어 있었다(출 26:31-33). 이 막은 굉장히 무거워서 보통 말이 양쪽에서 잡아 당겨도 찢을 수 없다고 한다. 성막의 전체 길이는 대략 45피트(약 13.5m)이고 너비는 15피트(약 4.5m)였다. 이 성막은 좋은 흰색 베실로 짠 막이 둘려쳐진 뜰 안에 있었고 이 뜰은 길이가 약 175피트(약 52.5m), 너비가 약 19피트(약 5.7m)였으며, 높이는 8피트(약 2.4m)는 족히 되었다. 행렬을 멈추고 진을 칠 때는 떠오르는 해를 마주보며 이스라엘 각 지파의 중앙에 세워져 있었다. 뜰에는 보통 사람들도 들어갔으나 성소에는 제사장들만 들어갔고,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일년에 단 한번 들어갈 수 있었다.


3. 기꺼운 마음과 지혜로운 마음


거룩한 명령(출 35:4-19)

백성의 반응(출 35:20-29)

이 일들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다.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뱅이, 통치자와 보통 사람들 모두가 참여했다. 가난한 사람은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성경구절은 아무데도 없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적으나마 정성껏 바치는 헌금을 받으셨다(막 12:42-43). 예수 그리스도는 바치는 문제에 있어서 아무도 제외시키지 않으셨다. 오늘날 하나님은 영적인 성전, 19세기 동안 조용히 커 온 성전을 건축하고 계시다. 성막이 건설되고 있는 과정에서 망치나 도끼나 어떤 쇠 연장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왕상 6:7/엡 2:19-22 참조). 하나님의 일이나 일군들을 위하여 바치는 것은 모든 신자의 특권이다. 우리가 바칠 수 있는 양이 적은 것일지 모르나 첫째 기꺼이 드리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것에 따라서 받으시며, 없는 것은 받지 않으신다(고후 8:12).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우리는 자신을 위해 쓰기를 좋아하고,

끝없이 보물을 쌓아두지만

주님을 위해서는 다만 빌려드릴 뿐.

주여, 당신은 모든 것을 주신 분이건만.“

이 세계에서 드리는 사람들은 영원 세계에서 백만장자들이다."


출 15-27    

4. 접근방법(25-27장)


하나님이 인간에게 접근하심-25장에서 27장까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접근하심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로마서에서 자세히 설명된 진리와도 상응한다. 이 부분에서 첫째로 된 진리와도 상응한다. 이 부분에서 첫째로 언급되고 있는 특별한 제구(祭具)는 법궤이며, 피로 얼룩진 시은소가 덮여 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에서...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로마서 3장은 이 진리를 설명하며, 이 표현의 본체적인(모형이 아닌) 의미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인간이 하나님께 접근함-28장에서 30장까지는 인간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을 설명한다. 이 부분은 히브리서의 가르침과 상응된다. 법궤가 첫 부분(하나님이 인간에게 접근하심)에서 뛰어난 것이듯, 인간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두번째 부분에서는 대제사장의 역할이 특출하다.


5. 성막의 기구들


우리는 성막의 기명과 기구들에 대한 설명이 안에서 밖으로, 즉 지성소에 있는 법궤로부터 뜰 문 안에 있는 놋단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았다(출 25-27:16). 그러나 문에서 함께 따라가며 가까이 가면 이 순서와는 거꾸로 이 기구들을 만나게 된다.


1. 문 6. 금촛대

2. 놋단 7. 향단

3. 대야 8. 휘장

4. 문 9. 지성소

5. 떡상 10. 법궤


이 자료의 대부분은 죠지 헨더슨의 「출애굽기 연구」(George Henderson “St-udies in the Book of Exodus“)에서 발췌하였다."


출 28-31

제사장 직분-출애굽기 28-31장-


1. 제사장 직분에 대한 서론


제사장 직분에 대한 연구의 서론으로서, 이스라엘 국가의 구분을 먼저 알아야 하겠다. 이 부분은 삼중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아론과 그의 자손은 제사장으로 선택되었다(출 28장)

레위 지파는 성막의 예배를 거행하도록 선택되었다(민 3장).

그 남은 자들은 이스라엘의 군대이다(민 1-2장). “이렇게 하여 제사장 가족, 일군들의 지파, 그리고 무장한 군인들의 민족으로 구성되었다(민 3). 달리 말해서 예배자(Worshippers), 일군(Workrs). 군인(Worriors)이 있었다.“ 거의 500년 동안,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다윗에 이르기까지 성막은 이 민족에게 단결을 가져다 주었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재해 계심을 증거했다(왕상 6:1). 솔로몬의 출현과 성전의 건축으로 성막의 사용과 봉사가 끝났다(대하 5:1-10).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거처가 그 형태는 바뀌었지만 그가 신실한 자기 백성들 중에 임재해 계시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


2. 접근 방법


이것은 앞 부분을 복습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복습이 꼭 필요하다. 접근의 방법은 출애굽기 25-30장에 설명되어 있다. 25-27장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접근해 오시는 방법을 설명하며, 로마서에서 자세히 설명된 진리와 상응한다. 이 부분에서 처음에 언급된 특별한 기구는 법궤이며 피로 얼룩진 시은소(속죄소)가 덮여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에서...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말씀하셨다. 로마서 3장은 이 진리를 설명하며 이 표현의 원형적인(모형이 아닌) 의미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두번째 부분은 28장에서 30장까지 계속되며 인간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으로, 히브리서의 가르침과 상응한다. 법궤가 첫부분에서 뛰어난 것이듯 두번째 부분에서는 대제사장이 탁월하다.


3. 이 부분을 푸는 열쇠


이 열쇠는 히브리서 7, 8, 9, 10장에서 찾게 된다. 출애굽기 28장에서 30장까지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장들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히브리서가 기록될 때에는 아직 성전이 서있었고 의식이 행해지고 있을 때였지만(히 10-11장 참조), 기자는 그의 풍성한 교훈을 성전에서 이끌어내지 않고 옛 성막에서 이끌어낸다. 여기에는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성막이 사용된 시기 동안의 이스라엘의 역사는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 순례자였으며, 그 후에는 군인이었던 사람들의 역사이다. 법궤가 고정된 건축물인 성전으로 이동될 때 궤를 나를수 있도록 옆의 고리에 끼는 채가 빠져나왔다(대하 5:9). 즉 순례의 날들이 끝난 것이다. 이 땅에서 나그네요 순례자인 우리들에게, 이 땅에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는 이들에게(히 13:1-), 이 곳이 우리의 쉴 곳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에게(마 2:10) 이 고대 구조물이 주는 가르침은 교훈과 위로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의 황량한 환경을 상징으로 보여 준다. 곧, 이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는 않은 교회를 가리킨다.

위에서 말한 히브리서의 각 장(7, 8, 9, 10장)에서 이 주제와 관련있는 네 가지 언급을 뽑아보자. 각 경우에 있어서 교훈이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장 직분과 그리스도인의 시대 구분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제사장 직분-“저희(아론의 자손들) 제사장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히 7:23-24). 이 서신에서는 예수님이 변함이 없으신 분이라고 두 번 언급되었다(히 1:12/히 13:8).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보좌에서의 미완성된 사역이라는 대조적인 짝을 찾게 된다(요 19:30/히 7:25). 죄의 형벌로부터 우리를 구하려고 죽으신 분이 이제는 사셔서 죄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지키신다.


제물-“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유대인의 제단에서 죽임을 당한 제물들의 피로써는 죄악된 양심에 평화를 줄 수 없으며, 죄의 얼룩을 씻어버릴 수도 없다. 그러나 하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다. 이는 다른 어떤 희생 제물보다도 고상한 이름과 풍성한 피를 가진 제물이다.


지성소-성막은 하늘의 일들의 양식을 보여주는 것이며(히 9:23),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신성한 명령이 바로 이 사실이다(출 25:4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히 9:24). 이 성구를 주의깊게 살펴보면 세 가지 중요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는 어디에 나타나시는가? 하늘에,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

● 언제 나타나시는가? 지금이다.

● 누구를 위함인가? 우리를 위한 것이다.


결과-성막의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앉을 의자가 없다. 이 단순한 이유로 보아 그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희생은 모두를 위하여 홀로, 그리고 모두를 위하여 단 번에 된 것이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의 예물과 제사가 “예배하는 자를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음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제는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고 강력히 확신시킨다(히 9:9/히 10:14). 예비하는 자의 양심은 희생제물의 가치로 나타난다.


4. 몇 구절에 대한 주석


출애굽기 30장 7절의 불과 출애굽기 30장 10절의 피는 대속물 없이는 받을만한 예배가 없음을 가르쳐 준다. 달리 말해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유일한 기도는 “주여,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속전(구속의 값)은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모두에게 동일하다(출 30:15). 이 말은 부자가 구원을 받은 후에 남보다 많이 헌금을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 아니다. 구원을 위하여 일하는 것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말씀으로 매일 씻는 일에 태만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효력을 잃게된다(출 30:21).


이 내용의 대부분은 죠지 헨더슨의 “출애굽기 연구“에서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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