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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4장18-13장
한사랑 2008.09.28 조회 : 1024
파일 :

출 4:18-31  

3. 하나님이 모세에게 확신을 주심(4:18-31)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적의 표적과 그의 형 아론이라는 조력자(?)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 구절들을 보면 아직 믿음으로 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장인에게 애굽으로 여행하는 일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형제가 아직 살아있음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모세는 떠나기 전에 신실한 태도로 이 땅의 임무를 돌보려 했으나, 이드로에게 좋은 간증이 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 그가 새로운 봉사의 생활로 한 걸음 내딛자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확신들을 유의해서 보자.


그의 말씀(19-23절)-모세를 죽이고자 했던 사람들은 죽었다. 하나님은 모세가 그를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않기를 원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해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나 큰 도움이 되어 주는가!그의 징계(24-26절)-유대인에게 할례는 중요한 것이었으나 모세는 자기 아들에게 그 언약을 시행하는 일을 무시했었다(창 17장).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자기의 직무를 생각나게 하도록 징계를 내리셔야 했다(아마도 병들었던 것같다). 모세가 영적인 일들에 있어서 자기 집안조차 제대로 이끌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스라엘을 인도할 수가 있겠는가 ? 모세는 아내와 아들을 미디안에 남겨놓고(18:2) 아론과 함께 간 것이 분명하다.


그의 인도하심(27-28절)-하나님은 아론이 오고 있다고 약속했었고(14절), 이제 그 약속을 성취하셨다. 비록 모세와 아론이 둘 다 연약함을 지니고 있었고, 하나님을 실망시켰으며, 서로간에도 한 번 이상 실망시켰던 반면, 모세가 형을 옆에 둔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모세가 불타는 나무를 보았던 “하나님의 산“에서 만났다(3:1). 모세는 하나님이 그에게 계시하셨던 위대한 진리들을 형에게 말했다.


백성의 영접(29-31절)-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3:18).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모세를 영접하며 머리숙여 절하던 이 유대인들은 그들의 노역이 더 심해지자 그를 미워하고 비판했다(5:19-23). 사람들의 반응에 당신의 희망을 걸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언제나 당신을 실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출 5-10     

선행된 아홉 재앙-출애굽기 5-10장-


1. 명령


이 장들에서 하나님은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고 일곱 번 말씀하신다(5:1/7:16/8:1/8:20/9:1/9:13/10:3). 이 명령은 이스라엘이 노예 생활을 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해방시켜 그를 섬기게 하려 하심을 나타낸다. 이것은 세상과 육신의 노예가 되어 바로에 의해 보여지는 바 사탄의 지배아래 있는 모든 잃어버린 죄인들의 상황이다.


바로가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눈여겨 보자.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의 말에 순종해야 하는가?“(5:2).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헛소리“로 들린다(5:9).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에게 제시했으며 그 결과로 이스라엘의 노역이 무거워졌다. 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말씀에 항거하여 마음을 굳게 한다(3:18-22/4:21-23).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자기 주장을 제시하여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 것이지만, 바로 자신이 하나님이 주장에 대항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강퍅케 한 것이 된다. 얼음을 녹이는 그 태양이 진흙도 굳게 한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를 보고 도움을 청했으나, 그들은 구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여호와께는 청하지 않았다(5:15-19). 유대인들이 모세의 의견을 따를 수가 없었고(5:16-23), 그를 격려하는 대신 오히려 그를 힐난했던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지내는 신자들은 도움이 되기는 커녕 지도자들에게 근심을 끼친다. 모세는 물론 실망했으나 그의 문제를 여호와께 가지고 갔다. 6장에서 하나님은 그의 이름(1-3절)과 그의 언약(4절)과 그의 개인적인 관심(5절), 그리고 그의 신실하신 약속들(6-8절)을 모세에게 상기시켜 주심으로 그를 격려하셨다. 하나님의 “나는...이다“ “내가... 하겠다“는 말씀은 적을 정복하기에 충분하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압제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은 그의 능력과 영광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6:7/7:5/7:17/8:10/8:22).


무대가 설치되었다.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였고, 이제 하나님은 애굽에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박해하는 나라들을 심판하심으로 창세기 12장 3절에서 하신 약속을 성취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능력(9:16), 그의 진노(시 78:43-51), 그의 광대하심을 나타내며, 애굽의신들이 거짓 신인 것과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실 것이었다(12:12/민 33:4).


2. 대결


애굽에 내린 열 재앙은 몇 가지 일을 성취하였다.


재앙은 하나님의 능력과 돌보심을 이스라엘에게 확신시키는 표적이었다(7:3).

이스라엘을 박해하는 애굽 민족을 징벌하며 그들의 신이 거짓됨을 나타내는 심판의 재앙이었다(9:14).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바와 같은 장차 임할 심판을 예표하는 재앙이었다.


재앙의 차례를 유의해서 보자. 이 재앙들은 세 가지씩 세 그룹으로 분류되어지며, 열번째 재앙(장자의 죽음)으로 마무리 된다.


1)물이 피로 변함/7장 14-23절(경고됨-7:16 “내 백성을 가게 하라“)

2)개구리/8장 1-15절(경고됨-8:1)

3)이 /8장 16-19절(경고되지 않았고 술객들이 흉내내지 못함-8:18-19)

4)파리떼 /8장 20-24절(경고-8:20)

5)가축의 전염병/ 9장 1-7절(경고-9:1)

6)백성에게 종기가 남/ 9장 8-12절(경고없이 임했으며 술객들도 괴로움을 당함-9:11-12)

7)우박과 불/ 9장 13-35절(경고됨-9:13)

8)메뚜기/ 10장 1-6절(경고됨-10:3)

9)극심한 흑암/ 10장 21-23절(경고가 없었고 바로가 모세를 다시 보지 않겠다고 함-10:27-29)

10)장자의 죽음/ 11-12장(마지막 심판)


처음의 세 가지 재앙은 유대인들도 함께 받았으나 그 다음의 일곱 재앙에서는 유대인과 애굽인이 구별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자(8:20-24). 출애굽기는 성경의 두번째 책이고 둘은 분할의 숫자이다.


재앙들은 사실상 애굽의 신들과 여호와 사이의 대결이었다(12:12 참조). 나일강은 그들에게는 생명(생활)의 근원이었으므로, 신으로서 숭배되었다(신 11:10-12). 모세가 이것을 피로 변하게 했을 때, 이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여신 헥트(Hegt)는 개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애굽인에게 있어서 개구리는 부활의 상징이었다. 개구리 재앙은 그 백성들로 하여금 여신에게서 등을 돌리게 했음이 분명하다. 이와 파리떼는 백성들에게 불결을 가져왔는데, 이는 굉장한 타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애굽인들은 점 하나 없을 만큼 깨끗하지 않으면 신들에게 예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염병은 애굽인들이 신성시하는 가축들을 공격한 것이었다. 하토르(Hathor)는 “암소-여신“이었고 아피스(Apis)는 신성한 황소였다. 건강과 안전을 주관하는 신들과 여신들은 독종과 우박, 그리고 메뚜기떼로 말미암아 공격을 받았다. 흑암의 재앙은 애굽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애굽은 태양신 라(Ra)를 주신으로 섬겼기 때문이다. 태양이 3일 동안 가리워졌을 때 이것은 여호와가 라(Ra)를 정복했다는 의미였다. 마지막 재앙(장자의 죽음)은 출산의 여신 메스케미트(Meskhemit)와 그녀의 동료 하토르(Hathr)를 정복했는데 이들은 장자를 지키도록 되어 있었다. 이 모든 재앙들은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물론 이와 같은 재앙들을 요한계시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신, 곧 사탄과의 최후 대결을 물이 변하여 피가 되는 것(계 8:8/계 16:4-5), 개구리(16:13), 육체의 질병과 고난(16:2), 우박(8:7), 메뚜기(9:1-) 흑암(16:10) 등의 재앙으로 묘사하셨다.

애굽의 술객들도 지팡이를 뱀으로(7:8-13)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7:22-25), 개구리를 모으게 하는 것들은 모세를 흉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티끌로 이를 만들지는 못하였다(8:18-19). 디모데후서 3장 8절은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흉내내어 그들에게 대적할 것이라고 경고한다(살후 2:9-10 참조).


3. 타협


바로는 사탄의 모형이다. 그는 애굽의 신이었다. 그는 최고의 능력(하나님이 제한한 곳을 제외하고)을 소유하고 있었고, 거짓말장이요 살인자였으며,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백성을 미워했다. 바로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싶지 않았으므로, 네 개의 교묘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8:25-27)-하나님은 세상에서의 완전한 분리를 요구하신다. 세상과 벗됨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약 4:4). 애굽인들은 소를 숭배했으므로 유대인들이 소를 잡아 여호와께 제사드리는 것을 보고 적대감을 가질 것이었다. 신자는 “나와서 분리되어야 한다“(고후 6:17).


멀리가지 말라(8:28)-“광신자가 되지 말라!“고 세상은 말한다. “종교를 가지는 것은 좋지만 너무 진지하게는 되지 말라!“ 여기서 “경계선 신자“, 즉 세상과도 가깝고 동시에 주님과도 가까운 곳에 머물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된다.남자만 가라(10:7-11)-이것은 여자와 자녀들은 세상에 남겨두라는 뜻이다. 믿음은 전체 가족을 포함하는 것이며 남자에게만 관계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정의 머리들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세상에서 떠나 분리된 생활을 하는 축복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때가 너무나 많다.


재산을 애굽에 남겨 두라(10:24-26)-사탄은 우리의 물질적인 부를 붙잡아 두어 주님을 위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를 몹시 좋아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며,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마 6:21). 양떼와 소떼를 사탄이 사용하게 하여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다(말 3:8-10).


모세는 이 타협안들을 거절하였다. 왜냐하면 사탄과 세상에 타협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과 평화롭게 지냄으로 승리를 얻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전폭적인 순종과 완전한 분리를 요구하신다. 이 일은 양의 피를 흘리고 홍해를 건넘으로 성취되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우리가 그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갈 1:4)."



출 11 

유월절-출애굽기 11-13장-


이 부분의 문제를 푸는 열쇠는 어린 양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국가의 성립과 노예생활로부터의 구원을 나타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그의 사역을 상징한다(요 1:29/고전 5:7-8/벧전 1:18-20).


1. 어린 양이 요구됨(11장)


“한 가지 재앙을 더!“ 하나님의 인내가 극에 달하여 그의 마지막 심판인 장자의 죽음을 내릴 차례였다. 어린 양의 피로 보호를 받지 못하면 모두에게 죽음이 임할 것이었다(11:5-6/ 12:12-1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죄의 삯은 사망이다!“ 하나님은 “장자“가 죽을 것이라고 구분지으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한 번 태어남을 거절하시는 것을 말하고 있다. “두 번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처음 태어난“ 사람들, 곧 장자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니 너희는 거듭나야 한다.“ 인간들은 죽음의 형벌에서 자신을 구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어린 양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

오랫동안 유대인들은 대가없이 애굽인들을 위하여 노예생활을 했으므로 이제 하나님은 그들이 정당한 삯을 요구하도록 허락하신다. 이것은 빌리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것이었다(창 15:14/출 3:21/출 12:35 참조).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애굽의 장자와 이스라엘의 장자는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은 양의 피를 바른 데에 있었다(7절).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지만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피 아래 있어“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출 12:1-5    

2. 어린 양이 선택됨(12:1-5)


유대인들은 두 가지 달력을 사용하는데, 신앙력과 시민력이다. 유월절은 신앙력이 시작되는 첫 달에 지켜진다. 어린 양의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이룬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의 죽음이 믿는 죄인들에게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과도 같다.


양은 베임을 받기 전에 선택된다-열흘째에 선택되어 14일과 15일 사이의 저녁에 죽인다. 어린 양은 죽임을 당하려고 따로 분리된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미리 운명지어진 어린 양이었다(벧전 1:20).흠이 없다-이 양은 상처가 없는 수양이었고 이는 흠과 점이 없으신 완전한 하나님의 어린 양을 상징한다(벧전 1:19).


검사를 받는다-10일부터 14일까지 사람들은 양들을 지켜보고 만족한 것인지를 확인한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그의 지상 사역 기간 중에, 특히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일주일 동안, 검사를 받으시고 지켜봄을 당하셨다!


다음의 발전과정을 유의하자. “어린양“(3절)이 “그 어린양“(4절)으로 또 “네 어린양“(5절)으로 변천된다. 이것은 “한 구주“(a Saviour)(눅 2:11), “그 구주(the Saviour)“(요 4:42), “내 구주(my Saviour)“(눅 1:47)와 비슷하다. 그리스도를 “한 구주“(많은 구주 중의 하나)나 “그 구주“(다른 사람에게 구주)라고 불러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그는 나의 구주이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출 12:6-7    

3. 죽임을 당하는 어린 양(12:6-7)


살아있는 양은 사랑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으로 구원을 받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본이나 그의 생활을 통하여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구원을 받는다. 히브리서 9장 22절과 레위기 17장 11절을 읽고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의 중요성을 알아보자. 물론, 양을 죽이는 것은 지혜로운 애굽인들이 보기에 어리석은 일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다(고전 1:18-23).

어린 양의 피는 집의 문에 발라야 되었다(12:21-28).  12장 22절에 나오는 그릇이란 단어가 사실상 문지방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문지방의 움푹 들어간 곳에서 어린 양의 피를 묻혔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문 양옆의 기둥과 문위의 인방에 그 피를 뿌렸다. 집에서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피를 넘어가는 것이며 저주를 받았다(12:22/히 10:23). 물론,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한 날은 그 달의 14일째였고 바로 유월절 어린 양이 드려지는 날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그것을 죽이라고 했지 그것들을 죽이라고 말하지 않았음에 주목하자. 하나님께는 한 어린 양(One Lamb)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22장 7절에서 이삭은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세례(침례)요한은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대답했다. 하늘의 모든 이들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고 말한다(계 5:12)."


출 12:8-20  

4. 양을 먹음(12:8-20)


우리는 유월절, 곧 무교절의 중요 부분을 무시하는 때가 더러 있다. 누룩(효모:yeast)은 성경에서 죄를 상징한다. 누룩은 잠잠하게 일하면서 부패시키고 부풀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불로써만 처리된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절기 동안 누룩을 모두 집 밖에 두어야 했고 7일 동안 누룩있는 떡을 먹지 못하도록 되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을 적용시킨다. 이 장을 주의깊게 읽자.


어린 양의 피는 그들을 죽음에서 건져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순례 여행에 대비하여 힘을 얻도록 그 양을 먹어야 했다. 구원은 다만 시작일 뿐이다!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 위한 힘을 얻으려 한다면 그리스도로 배를 채워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순례하는 사람들로서(11절) 주의 명령에 따라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양은 불로 구워야 했는데 이는 십자가에서 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말해 준다. 양을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 먹는 것은 금지되었다. 이것은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 곧 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 아니라 그의 지상 생활과 모범으로 배불리는 노력을 말해주고 있다.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두어서는 안되었다. “남은 것“은 신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전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의 완성된 일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남은 것은 부패하게 되며 그 형태를 파괴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썩지 않았다(시 16:10). 유감스러운 것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어린 양을 죽음에서 건져준 구원으로 받아드리면서도, 그 양을 매일의 양식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43-51절은 이 절기에 관한 보다 깊은 교훈을 준다. 낯선 사람이나 고용된 종이거나 할례를 행치 않은 사람은 참예할 수 없었다. 이런 규례는 구원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출생하는 것으로서, 거기에는 여행자가 없으며, 오직 은혜로 말미암으며 일해서 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통해서 얻은 것임을 상기시켜 준다. 할례는 골로새서 2장 11-12절에 기록된 바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영적인 할례를 지적하기 때문이다. 이 절기 중에는 집 밖에서 먹지 않도록 했는데(46절), 이 절기를 피흘린 양과 분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와는 별도로 “그리스도를 먹겠다“는 현대주의자들은 스스로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출 12:21-42 

5. 어린 양을 신뢰함(12:21-42)


그 날 밤에 구원을 받는 데는 믿음이 있어야 했다. 애굽인들은 이 모든 일들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으며, 모세와 그의 백성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반드시 명심할 것은 그 백성이 피로 구원을 받았고 말씀으로 확인을 받았다는 것이다(12절). 피 아래 있어 안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느끼지 못한“ 유대인들이 많았음은 의심할 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구원을 잃을까봐 근심하는 성도들이 있음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그가 하겠다고 말씀하신 대로 정확히 행하셨다. 애굽인들은 유대인들을 충동하여 그 땅을 떠나게 했으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다(11:1-3). 하나님은 하루도 늦지 않으셨다. 그는 그의 말씀을 지키셨다!


6. 어린 양이 영광을 받음(13장)


어린 양이 장자를 위해 죽었고 이제 장자는 하나님께 속한다. 유대인들은 우리가 값으로 산 하나님의 백성인 것과 마찬가지로 “값주고 산 바 된 백성“이었다(고전 6:18-20). 이 민족은 그들의 장자, 곧 최선의 것을 여호와께 바쳐서 어린 양을 영원히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 그를 섬기기 위해 손과 눈과 입을 그에게 바칠 것이다(9절).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가장 가까운 길이 아니라 그들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셨으며 오늘날도 그렇게 하신다(17-18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분명하게 그의 뜻을 밝히신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먹이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데 우리가 그를 위해 하는 일은 너무 적다!


요셉의 뼈에 대해서는 창세기 50장 24-26절과 여호수아 24장 33절, 히브리서 11장 22절을 읽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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