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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1장-3장17절
한사랑 2008.09.28 조회 :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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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서론 

출애굽기/ 서론과 개요


출애굽기 서론


-이름:출애굽기는 헬라어로는 “탈출“을 의미한다(“떠남“/ 히 11:22 참조). 이 책에서는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의 속박과, 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또는 “탈출“)을 설명한다. 출애굽기의 핵심 단어는 구속이다. 왜냐하면 “구속한다“는 것은 “석방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책 전체가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원을 상징하는 묘사들로 가득 차있다. 이 단어가 신약에서는 두 군데에서 사용되었는데, 십자가 상에서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주제로 한 부분인 누가복음 9장 31절에서, 또한 베드로후서 1장 15절에서의 “떠남“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성경에는 세 종류의 탈출 경험이 나온다. 이스라엘의 애굽에서의 구원,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의 죄인 구원, 죽음으로써 이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신자들의 구원이다.


-저자:모세가 이 책을 기록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책의 통일성(개요 참조)은 한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보여주며, 목격한 사실에 대해 기록했다는 것은 당시에 저자가 살아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이 책이 모세의 기록임을 확인하셨다(요 7:19/요 5:46-47).


-목적:창세기는 시작의 책이요, 출애굽기는 구속의 책이다. 이 책은 애굽으로부터의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과, 그 종교 의식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제시한다. 물론, 이 언급들은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서 값주고 사신 구속을 상징하고 있다. 출애굽기에, 특히 성막에는 그리스도와 신자에 대한 모형과 상징이 많이 나온다. 이 책에는 율법의 수여 과정도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사건들과 상징들을 모르고는 신약을 잘 이해할 수 없다.


-모형:출애굽기에는 몇 가지의 기본적인 모형이 나온다.


1)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며 그들을 속박 아래 두려고 하는 세상 제도에 대한 모형이다.

2)바로는 사탄의 모형이며 “이 세상의 신(神)“으로 자기를 예배하고 하나님을 거부할 것을 요구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노예화하려고 생각한다.

3)이스라엘은 세상의 속박에서 구원받아 순례의 여행길에 오른 교회를 상징하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

4)모세는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5)홍해를 건넌 일은 이 현실의 악한 세상에서 신자를 구원하는 부활의 상징이다.

6)만나는 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이심을 상징한다(요 6장). 바위를 친 것은 그리스도를 친 것으로, 그의 죽으심을 통해 성령을 받게 된다.

7)아말렉은 순례의 여행에서 신자를 공격하는 육신의 상징이다.

8)출애굽기의 핵심적인 모형은 물론 그리스도의 죽음을 묘사하는 유월절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피가 흘려졌고, 우리가 매일 강건하도록 어린 양을 먹음으로 그의 생명을 소유한다. 자세한 것은 뒤에서 살펴보자.


-모세와 그리스도: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상징이므로 여러 가지 비교와 대조를 볼 수 있다.

직분상으로 그리스도와 비교해 볼 때 모세는 선지자(행 3:22), 제사장(시99:6/히7:24), 종(시 105:26/딤전 2:5), 구원자(행 7:35/살전1:10)였다.

성격상으로 보아 그는 온순하고(민 12:3/마11:29), 충성되고(히 3:2), 순종적이며, 말과 행위에 능력이 있었다.(행 7:22/막 6:2)

생애에 있어 그는 아들로 태어나 죽을 위기에 처했었고(마 2:15-)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호하셨으며, 애굽에서 통치하는 것보다 유대인들과 고난당할 것을 택했다(히 11:24-26). 그는 처음에는 형제들에게 거절당했으나 두번째는 영접을 받았다. 그가 거절당했을 때에 이방인 신부를 얻었다(그리스도와 교회). 모세는 애굽을 책망하였고, 그리스도는 세상을 책망하셨다. 모세는 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했고,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흘리셨다(눅 9:31). 그는 백성을 인도했고, 먹였으며, 그들의 짐을 졌다.

물론 대조적인 면도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지 못하여 여호수아로 그 일을 수행하게 하였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7)."



출애굽기 개요 

출애굽기 개요


-주제:구속(눅 9:31/벧후 1:15)


1. 구속-하나님의 능력/1-17장


죄의 노예/ 1-4장

바로의 완악함 / 5-11장

하나님의 구원 / 12-17장

(1)유월절-죽임당한 양, 그리스도 / 12-13장

(2)홍해 횡단-부활 / 14-15장

(3)만나-생명의 떡, 그리스도 / 16장

(4)내려 친 바위-성령을 주신 그리스도 / 17장 1-7절

(5)아말렉-육(肉)대 영(靈)/ 17장 8-16절


2. 공의-하나님의 거룩함/ 18-24장.


준비된 민족 / 18-19장

계시된 율법 / 20-23장

(1)계명(하나님 편)/ 20장

(2)심판(인간 편)/ 21-23장

체결된 언약 / 24장


3. 회복-하나님의 은혜/ 25-40장


성막의 설계/ 25-31장

성막의 필요성-이스라엘의 죄 / 32-34장

성막의 건설 / 35-40장


출애굽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을 찾아보기는 쉬운 일이다. 모든 사람이 죄와 세상에 속박되어 있어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은 구속주, 그리스도를 보내셔야 했고 그의 피(유월절)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저주로부터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부활을 통하여 애굽(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이 사실은 홍해를 건너는 것으로 모형지워졌다.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영(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우리순례의 여행을 시작한다. 하나님은 천국의 만나(말씀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로 우리의 영양을 공급하시는데 우리는 가끔 세상의 “부추, 양파, 마늘, 고기“를 먹으려는 육적인 식욕을 나타낸다. 그는 성령의 생수를 주셔서 우리의 순례를 새롭게 하신다. 그러나 언제나 육신(아말렉)과의 투쟁이 있고 이 투쟁에서는 말씀과 기도로써만 승리할 수 있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이것은 이 땅에서 천국까지 가는 그리스도인의 여행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세상과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할 풍성한 유업에 이르기까지의 영적인 여행을 상징한다. 가나안은 에베소서 1장 3절의 “모든 신령한 복“의 모형으로 나타난다. 많은 성도들이 실패의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출 1  

“노예가 된 이스라엘“-출애굽기 1-2장


1.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박해(1장)


새로운 세대(1:1-7) -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가 될 것은 창세기 15장 13-16절에서 예언되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을 때가 100세였으므로 4세대는 400년과 같다고 하겠다. 오늘날에는 한 세대는 그보다 적을 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약속도 이루셨다(창 46:3). 야곱의 본래 가족이던 70명이 백만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임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수가 늘어났다(행 7:15-19 참조).


새로운 왕(1:8-14) - 사도행전 7장 18절은(문자대로의 헬라어로는) “다른 종류의 또다른 왕“이라고 말한다. 즉 새로운 왕이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뜻이다. 역사는 이 시대에 “힉소스“의 침략자들이 애굽을 점령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들은 아마도 앗시리아에서 온(사 52:4) 셈족인 것 같다. 새 왕은 자기 백성에게(애굽인이 아님) 유대인이 이처럼 많다는 것은 자신의 통치에 위협이 된다고 경고하여 유대인들을 가혹하게 대하기로 결정했다. 요셉은 애굽의 구원자였으므로 왕이 애굽인이라면 그를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애굽에서의 이런 노예생활은 죄인이 이 세상에서 영적인 노예생활을 하는 모습이다. 유대인들은 애굽으로 내려가 가장 좋은 땅에서 살았다(창 47:6). 그러나 이런 호화로움은 후에 고난과 시련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잃어버린 죄인과 얼마나 유사한가! 죄는 기쁨과 자유를 약속하나, 가져다 주는 것은 슬픔과 속박이다.


새로운 작전(1:15-22) - 남자 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왕의 계획은 큰 성공을 거두는 것 같았으나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 하나님은 산파들을 사용하여서 왕을 혼란시키고 후에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사용하여 바로의 딸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연약한 것들을 사용하여 강한 자들을 패망케 하신다. 물론 이 전략은 살인자 사탄에게서 힘입은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을 멸망시켜 메시야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사탄의 노력의 일부였다. 후에 사탄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할 때 헤롯을 이용하였다. 여인들이 왕의 명령을 거스린 처사는 옳은 것인가 ? 그렇다. 정당하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행 5:29). 그 땅의 법이 명백히 하나님의 명령에 반대될 때 신자들은 하나님을 첫자리에 둘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하나님은 산파가 바로에게 한 변명을 인준하시지는 않았지만(그들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믿음을 보고 축복하셨다. 명심할 것은 하나님의백성을 익사시키려 했던 바로 그 통치자가 자기의 군대가 홍해에 익사하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이다(출 15:4-5). 우리는 심는 대로 거둔다. 비록 그 추수시기가 늦어진다 할지라도(전 8:11)!


이 장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노예로 만들려는 사탄의 시도가 나온다. 1절은 유대인들을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이다(창 32:28). 세상의 전투자(사탄)는 하나님과의 투쟁자에게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사탄의 속박에서 구원받게 된다."


출 2 

2. 하나님이 선지자를 예비하심(2장)


마치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신 것처럼 보인다. 유대인들은 기도하고 부르짖으며(2:24-25) 하나님의 구원이 어디서 올 것인지 궁금해 했다. 창세기 15장의 말씀을 기억했다면 400년이 경과해야 함을 알았을 것이다. 이러는 동안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준비하고 계셨으나, 또한 사악한 가나안 민족들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시며 기다리고 계셨다(창 15:16).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신다. 지도자를 선택해 놓고, 그의 능력의 일을 위해 준비시키고 계셨다. 하나님이 모세를 준비할 때 사용하신 방법을 눈여겨 보자.


경건한 가정-사도행전 7장 20-28절과 히브리서 11장 23절을 읽자. 출애굽기 6장 20절에서 이 경건한 부부가 아므람과 요게벳이었음을 알게된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결혼을 해야 했던 일은 위대한 신앙과 사랑의 행위였다. 하나님은 이 일로 인해 그들을 상주셨다. 믿음으로 행동했으므로(히 11:23), 그들의 아들 모세를 낳는 일에 관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있어야 했다. 그는 “준수한 아이“(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믿음으로 그를 하나님께 바쳤다. 부모들은 태어나는 각 아이들에게서 하나님이 무엇을 보시는지 알 수가 없다. 부모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녀를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이 아이를 강에 띄우는 것은 참된 믿음을 필요로 했다. 이 강은 다른 아이들도 내다버리는 곳이었다. 하나님께서 한 어린 아이의 눈물을 사용하셔서 어떻게 공주의 마음을 감동시키는지 눈여겨 보자. 또한 그를 양육하는 데에 그 아이의 친 어머니를 배정하시는 것을 보라(욥 5:13참조).


특수교육(행 7:22)-왕의 양자로 궁전에서 양육되며 모세는 애굽의 훌륭한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오늘날조차도 사람들은 애굽인들의 학문에 놀라고 있으며 모세는 반에서도 선두에 있었을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교육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모세는 자기가 받은 훈련을 사용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고난과 시련을 통해 임한 하나님의 지혜를 대신할 만하지는 않았다.큰실패(2:11-15/히 11:24-26)-모세가 궁을 떠나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어야겠다는 위대한 결심을 한 것은 40세 때였다. 우리는 그의 사랑과 용기를 칭송하지만 그의 행동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가 여호와를 앞질러 달렸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12절은 그가 눈으로 보이는 바 대로 행하고 믿음으로 행치 않았음을 말해 준다. “좌우로 살펴“보았고, 동산에서의 베드로처럼 모세는 손의 검과 팔의 힘을 의지하였다. 후에 그는 칼 대신 지팡이로,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로서 오는 능력으로 바꾸었다(6:1). 베드로처럼 모세는 적을 잘못 알고 싸웠다(사탄이 아니라 사람). 그는 잘못된 힘(영이 아니라 육신)을 사용했다. 그는 잘못된 무기를 사용했고, 때가 아닌 때에 행동했다. 그는 시체를 묻었으나 이것은 살인자를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았다. 다음 날은 두 유대인들이 싸우고 있었고 모세는 그들을 도우려 했다. 이 때 그는 적들과 친구들에게 사람을 죽인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가 취할 방책은 그 땅에서 도망하는 것뿐이었다.


모세의 실수를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그의 용기와 신념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반스 해프너 박사가(히 11:24-26 의 주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고, 불멸의 것을 택했고, 불가능한 일을 했다.“ 믿음에는 단호한 거절이 수반되며, 이러한 거절은 보상받게 된다. 불행하게도 모세는 행동을 너무 서둘렀다. 하나님은 그를 더 깊이 훈련하시기 위해 별도로 제쳐놓으셔야 했다.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고후 10:3-6).


오랜 지연 기간(2:16-25)-모세의 생애는 똑같은 세 기간으로 나뉘어진다. 애굽의 왕자로 40년, 미디안의 목자로 40년, 사역의 40년이다. 성경의 많은 중요한 장면들이 우물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주의를 끌 만하다.

양떼에게 물을 먹이려는 여인들을 돕는 친절한 행동으로 인하여 모세는 이드로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게 되었다. 소녀들이 모세를 “애굽인“으로 보는 것에 유의하자. 이 말은 그가 유대인을 닮은 것보다 애굽인과 더 닮았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적이어서(영적인 의미로) 사람들이 그 참된 유전 형질(形質)을 볼 수없음은 불행한 일이다! 모세는 미디안에서 충성된 종으로 40년을 보냈으며 여기서 하나님은 앞에 놓인 어려운 직무를 위해 그를 준비시키셨다. 그가 자기 민족에게 거절당하는 동안 이방인 신부를 취했는데,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습이다. “게르솜“이란 “이방의 객“을 의미하는데, 이는 모세가 자신의 참된 위치는 애굽으로 돌아가 이스라엘 백성과 항께 있어야 함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나 그는 백성의 신음소리를 듣고 행동할 적절한 시간을 기다리셨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는 적임자와 적절한 계획을 사용하셔서 적확한 시기에 역사하신다. 모세는 얼마 안되는 양을 돌보고 있으나 곧 민족 전체를 인도하게 될 것이다. 목자의 지팡이는 능력의 막대기로 바뀌며, 그는 하나님께 사용되어 능력의 민족을 창조하는 일을 도울 것이다. 그가 그 비천한 일에 충성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여 위대한 일을 수행하셨다."

출 3:1-모세의 소명-출애굽기 3-4장-


모세에게 새 날이 동터올랐고 모든 것은 변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아침, 그가 양들을 데리고 나갈 때에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큰 유익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슨 계획을 갖고 계신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심(3:1-6)


불타는 나무는 세 가지의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불타는 나무는 하나님의 모습이다(신 33:16).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계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나무는 타버리지 않았다.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불가능한 임무를 맡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 나무는 괴로움의 용광로를 통과하면서도 타버리지 않는 이스라엘을 상징했다. 인간들은 얼마나 자주 유대인을 근절시키려고 시도했던가! 그러나 실패해왔다.

끝으로, 그 나무는 모세의 예표(豫表)였다. 비천한 목자이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꺼뜨릴 수 없는 불이 될 것이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경이로움 중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장소로 인도되었음에 주목하라.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예배의 참된 시작이기 때문이다. 겸손하게 신을 벗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능력으로 행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부르시기 전에도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사 6장). 불타는 나무에 대한 기억은 광야에서의 긴 시련의 여정을 통하여 모세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출 3:7-10    

2. 하나님이 모세를 임명하심(3:7-10)


“내가... 고통을 정녕히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왔노라.“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소식인가! 모세는 자주 그의 사랑하는 백성의 상황에 대해 이상히 여겼으나 이제 그는 하나님이 내내 그들을 지켜보고 계셨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 때의 형편을 그리스도가 태어났을 때의 형편과 쉽게 적용시켜 생각할 수 있다. 속박과 시련과 슬픔의 시대였으나 하나님이 아들의 인격을 통해 강림하셔서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러내어 약속된 땅으로 데리고 가실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며, 그가 시작하신 일을 그가 끝내신다!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하려 하심을 듣고 기뻤다. 그런데 이제 그 자신이 구원자라는 소식을 듣는다. “내가 너를 보내겠노라!“ 하나님은 이 땅에 그의 일을 성취하시기 위해 언제나 인간이란 도구를 사용하셨다. 준비하는 데 80년이 걸렸으며 이제 행동할 때였다. 불행하게도 모세는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지 못했다."


출 3:11-4:17 

3. 하나님이 모세에게 응답하심(3:11-4:17)


모세는 그를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 즉각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실패자가 아니었던가? 가족이 있지 않은가? 나이가 많지 않은가? 아마도 이런 어떤 논란이 그의 마음 속을 스쳐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관해 논쟁적인 최소한 네 가지의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누구인가(3:11-12)-이전 40년 동안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모세의 겸손에 우리는 탄복한다. 그는 “배워... 말과 행사에 능한“(행 7:22)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러 해에 걸친 사막에서의 교제관계와 훈련은 모세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육으로 행하는 사람은 충동적이며 장애물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겸손하게 행하는 사람은 앞에 놓인 전투를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답은 그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은 40년 동안 그를 지탱케 했으며, 여호수아에게도 그러했다(수 1:5). 우리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요 15:5).


누가 나를 보내는가 ?(3:13-22)-이 질문은 회피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명을 위해 모세를 보냈다는 신적인 권위를 원할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여호와(“스스로 있는 자, 전에도 있었고, 이제도 있고, 영원히 있을 자“)라고 계시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이 이름에 다른 이름들을 첨가하셨는데, 요한복음에는 “나는...이다“(I AM)는 언급이 일곱 번 나온다(요6:35/요8:12/요10:9/요10:11/요11:35/요14:6/요15:1-5). 하나님이 “있는 자“라면 그는 언제나 동일하시며 그의 목적들은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을 성취하실 것을 모세에게 약속하신다.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4:1-9)-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믿게 될 것이라고 방금 말씀하셨으므로(3:18), 이 언급은 불신앙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가지 기적을 주셨다.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였고 손이 문둥병에 걸리는 기적이었는데, 이 기적들이 백성들 앞에서 그의 신임장이 될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때 우리 손에 가지고 있는것을 취하여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다윗의 물매, 베드로의 배, 바울의 학식을 사용하셨다. 물론 지팡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을 때 능력이 되어졌다. 모세는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기적을 통하여 육신의 사악함을 고치셔서 그의 영광을 위해 모세를 사용하실 수 있으심을 보여 주셨다. 모세의 손 자체는 별 것이 아니었으나 하나님의 손을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은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세번째 표적을 더하셨다. 이 표적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확신시켰다(4:29-31). 그러나 믿음없는 애굽인들도 이를 흉내내었다(7:10-25).


나는 재능이 없다.(4:10-17)-하나님은 “나는... 이다“(I AM)고 말씀하셨고 모세가 할 수 있었던 말은 “나는... 이 아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능력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실패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자기가 언변이 없다고 주장했다(바울에게는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전 2:1 참조). 그러나 사람의 입을 만드신 바로 그 하나님께 자신을 바칠 때에 그의 입을 사용하실 수 있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달변이나 수사(修辭)의 기술을 필요로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멧세지로 채울 수 있는 깨끗한 그릇이 필요하실 뿐이다. “다른 보낼만한 자를 보내시고 나는 보내지 마소서“라고 모세는 13절에서 외친다. 이런 불신의 태도가 하나님을 노하게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협력자로서 아론을 보내시지만, 아론은 도움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던 것이 드러났다. 그는 그 민족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했고(32:15-28), 모세에 대항하여 불평했다(민 12장). 모세가 살아계신 하나님 대신 육에 속한 연약한 인간을 의지하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14절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움직이실 때 “줄의 양 끝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는 다른 것을 세우기 위해 다른 하나를 내려뜨리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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