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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교도 이세상의 성자들
한사랑 2005.11.10 조회 : 1129
[추천]청교도-이 세상의 성자들
청교도-이 세상의 성자들
리랜드 라이큰
생명의 말씀사

청교도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성경)을 토대로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교회를 순화하고 그것을 신성한 영적 공동체로 승화시킴으로써 국가와 사회를 그 기초 위에 건설하려고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본서는 청교도의 참모습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를 사용하여 그들의 신앙 생활은 물론 일과 여가, 가정과 결혼 생활, 동, 교육, 사회 활동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청교도와 결혼

청교도는 결혼을 높이 평가했다. 그들은 독신 반대자들이었다. 그들은 자녀를 갖는 것을 결혼의 제1목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성적 사랑을 진정한 결혼에 없어서는 안될 부분으로 찬양했다. 뉴잉글랜드 이주민의 경우, 신부의 연령은 약 21세이고 신랑의 연령은 약 24세였다. 재혼은 흔한 일이었고 종종 배우자가 사망하자마자 재혼하기도 했다. 인크리즈 매더는, “가정은 교회와 국가의 양성소이다. 가정을 잘 관리하라. 그러면 국가는 보다 훌륭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청교도는 회초리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진실로 바라는 것은 부모의 권위에 대한 내면으로부터의 복종과 순종이었다.

청교도와 돈

청교도는 돈과 사유재산을 합법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를 종종 축복보다는 유혹으로 보았다. 따라서 자신의 만족을 위해 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비난을 가하였다.
물질적 풍요는 사람이 자족감을 느끼게 하고 하나님이나 이웃을 필요로 하지 않게 하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물질의 획득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부인하고 오만하게 하나님을 멸시하며  “여호와가 누구냐”고 말하게 할 수도 있었다. 사실상 뉴잉글랜드의 창립자들은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보다 부를 추구하는 이민자들을 더 우려했다. 청교도는 사치를 낭비적 방종이라고 비난했다. 그것은 어린이의 손에서 빼앗지 않으면 안되는 칼과 같은 것이었다.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1세대는 경건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으며 성공이 반드시 경건의 증거가 아니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빈곤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오는 심판으로 간주될 수 없었다. 경건한 사람들이 심한 빈곤을 경험하는 것은 상당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빈곤은 그 자체에 있어 덕스러운 것이 아니었고 일부 카톨릭 계층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추구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생충으로 간주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기여를 하는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들로 간주되었다.  경제적 차이들은 미국에서의 청교도의 시도를 붕괴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상호 의존을 격려함으로 사회질서를 도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17세기 후기의 설교들은 ‘가치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게으른’ 가난한 사람들을 사이를 구별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종종 악하게 묘사되었고, 목회자들의 눈에 죄와 빈곤 사이의 연관이 점점 더 명백해졌다. 가난한 사람들의 음주 습관을 책망하기도 했다.

청교도의 설교

제6장은 청교도의 설교에 관하여 소개하고 있다. 성경에 기초한 목사의 설교는 예배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였다. 말씀 전파는 뉴잉글랜드 청교도주의의 본질적이며 가장 중요한 교회 의식이었다. 말씀의 중요성과 말씀 전파의 중요성의 공적 표시로서의 강단은 대개 예배당 정면의 중심에 위치했다. 존 카튼의 생각에 의하면, 만일 성경이 사라지면 인간이 구원을 알게 되는 제1의 수단이 사라진다.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설교가 성경을 알리는 데 있어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데 일치했다.
청교도 설교들은 유머를 회피했고 성경에서 직접 이끌어 낸 것이 아닌 예화는 비교적 거의 포함시키지 않았다. 메시지의 긴박성은 목회자가 말씀을 해석하며 사용하는, 격렬하며 또한 간혹 애원하는 어조의 언어들에서 감지될 수 있다. 평이함, 설득력, 그리고 실제적인 적용은 청교도 설교의 특징들이었다.
1630년에서 1700년 사이에 매사추세츠의 5개의 공동체들에서 설교된 거의 5백 개의 설교들은 42.1%가 구약성경 본문에 근거한 반면에 57.9%는 신약성경에 근거했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를 하나님의 통일된 말씀이며 오류나 흠도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성경의 모든 부분에서 설교 본문을 이끌어 냈다.
설교는 청교도의 심장과 같다. 청교도에 의하면 목사가 담당해야 할 큰 의무 세 가지는 설교와 성례 집전과 기도하는 일이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주도면밀하게 설교를 준비했다. 대부분 목사들은 짤막한 메모를 가지고 설교했지만, 완벽한 원고를 작성하는 설교가들도 제법 있었다. 청교도는 강해 설교를 절대적으로 지지했다.  예배 중 설교를 시작하면서 성경책을 여는 행위는 강해설교의 목적을 상징화한 것이다. 강해설교의 목적은 특정 본문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밝히고 드러내는 일이다.

청교도의 실수와 공헌 

청교도의 장점은 그들의 용기,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충성스러움 등이다. 그러나 일부 청교도는 지나친 초연함과 엄숙함, 완고함 그리고 논쟁적 자세를 보여주기도 했다.
저자에 의하면 청교도들도 몇 가지 실수를 범하였다. 청교도들은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범한 실수 역시 그들의 일부일 수 밖에 없다. 청교도들이 범한 잘못은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을 보여 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
청교도들은 공리주의적 목적에서 오락을 옹호했다. 그들은 오락을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하는’ 활력소로 보았다. 어떤 의미에서 청교도들은 ‘현대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오락에 대해 썼다. 이렇게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여가 윤리를 펼친 것은 그들이 일을 너무나 강조한 탓이다. 청교도는 오락을 노동윤리에 부속시켰다.
토머스 카트라이트는 제6계명이 “건강을 유지해 주는 휴식과 여가를 적절하게 쓰지 않을 때도 깨진다. 꼭 칼로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백스터는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매일 주위하여 시간을 헛되이 버리지 않도록 하라...  무익한 오락, 옷차려 입기, 잔치, 한담, 소득 없는 모임, 또는 게으른 잠 등은 그대의 시간을 도적질하려는 유혹이니 각별히 조심할지어다.”

사실 청교도들은 너무나 엄격하게 생활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덕도 극단으로 치우치면 너무 많은 규율을 만든다. 때때로 안식일 준수는 모세 율법만큼이나 엄격할 때가 많았다. 어떤 사람은 “주일에 아직 밤이 깊지 않았는데도 사업에 대한 메모를 했다”고 해서 벌금형을 받았다. 플리머스에 사는 한 여자는 ‘빨래를 짜서 널었다’는 죄목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장황함은 청교도의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코튼 매더는 그의 임직식에서 1시간 15분이나 기도했다(이 때는 1시간 45분이나 설교를 한 뒤였다).  1625년 하원의원들은 7시간이나 되는 설교를 들어야 했다. “전체 예배 시간은 9시간이었고 예배가 드려지는 동안 단 한 사람도 기절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앤소니 버지스(Anthony Burgess)는 요한복음 17장을 145회에 걸쳐 설교했고, 맨튼(Manton)이라는 설교자는 시편 119편을 190회에 걸쳐 설교했다. 조시 트로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관해 수년에 걸쳐 대하 설교를 했다.  어떤 청교도 설교자는 요셉의 채색옷에 대해서만 4개월간이나 설교했다.
한 예배에서는 튀시 선생의 짧은 기도로 예배를 개회하고,마샬 씨가 열정적으로 두 시간을 기도했다. 목사님은 한 시간 설교했고 다시 바인즈씨가 두 시간 기도한 후에 시편을 노래했다. 핸더슨씨가 세태에 대해 열변을 토한 후, 튀시 선생은 짧은 기도로 예배를 폐했다.
청교도들에게는 삶의 치외 법권 지대란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신학적인 근거가 필요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청교도의 자녀 양육 관습을 보면 경건주의, 도덕주의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코튼 매더는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놀이를 하더라도 경건한 교훈을 되새겨 볼 수 있는 놀이를 하라”고 권하곤 했다.

청교도는 긍정적인 면에서도 많은 공헌을 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모든 것들을 그분과 맺는 관계를 따져서 평가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기뻐하는 것이야말로 청교도들이 추구하고 발견한 지복(至福)이었다.  청교도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삶은 영적, 도덕적 성결을 삶의 우선 과제로 삼는 것을 말한다. 백스터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성결은 최고 덕목이요 추천 사항이다.
청교도에게 삶의 모든 영역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다. 청교도는 모든 삶이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다고 믿었다. 삶의 전영역에 걸친 경건이 청교도들의 목표였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사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했다. 청교도들은 일상의 거룩함을 항상 생각했다. 아내나 자녀를 사랑하는 사소한 행동 조차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크고 위대한 일이고 은혜로운 행동이었다. 청교도들이 생각한 진정한 기독교의 표지는 실제 삶에서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문제의 근본을 살피는 자세가 있었다. 청교도들은 문제의 근본을 파고들려는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부와 내면을 강조했다. 따라서 ‘내면의 종교’를 강조하게 되었고 ‘내적 동기 중심의 윤리 체계’를 만들었다.
17세기에 미국의 해안에 당도한 청교도들은 자신들이 영적인 사명을 띠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도록 그 사명을 수행한다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고 확신했다. 아직도 미국인들 가운데 남아 있는 청교도 정신은 신앙과 근면한 생활을 요구한다. 다양한 형태로 미국 청교도의 기독교 신앙의 풍성한 유산은 지속되고 있다.

저자 리랜드 라이큰(Leland Ryken)은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대학인 휘튼 대학의 영문학 교수이다. 그는 오레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가장 왕성한 저작 활동을 하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와 문학 관계 분야에서 가장 많은 저서를 냈는데, <상상의 승리>, <기독교와 문학>,<문학에서 본 성경>등이 있다.

글/송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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